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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스승> 감상문

완전한인간지망생 2017. 2. 15. 11:18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을 완전히 습득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꼼꼼히 하더라도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의지나 역량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 날의 수업은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교사가 결국 맞닥뜨리는 질문은 '사람은 어떻게 배우는가'이다.
 
자크 랑시에르의 저서 <무지한 스승>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언어를 습득하고 대상을 구분한다. 이는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려는 의지,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타고 나기 때문이다. 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지능이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인간을 '지능의 시중을 받는 의지'리고 정의한다.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지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된다. 
 
랑시에르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지능을 타고나기에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학습의 결과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학습에 기울이는 주의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학생이 학습 내용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학습하려는 의지가 있고, 지능을 활용할 줄 안다면 인간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꼭 학교라는 제도적 틀을 사용하지 않아도 가르침이 가능하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도 가르칠 수 있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교육방법을 '보편적 가르침'이라고 부른다  
 
'보편적 가르침'은 실현할 수만 있다면 굉장히 멋진 교육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보편적 가르침'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실패 사례가 많았다. 그 이유는 '보편적 가르침'을 지나치게 절대화하거나 제도화하여 학습자의 의지가 뻗어나갈 자유를 제약했기 때문이다. 특정한 내용과 방식을 절대화하면 설명하는 자로서의 교사와 무지한 학생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학생은 영원히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불평등한 교실이 만들어진다. 진정한 '보편적 가르침'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아카데미쿱은 '교사-학생-학부모'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만드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무지한 스승>이 주장하는 바를 납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적인 주장은 그만큼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렵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도 교육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설명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동등한 만큼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는 그 차이를 조율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시각을 가지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보편적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교사들이 모여 만든 교육 공동체는 무엇까지 제도화하고 어떤 것을 교사의 자율에 맡길지에 대해서 세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매뉴얼로 만들면 교사 개개인이 자유의지를 발휘할 공간이 사라진다. 반면 아무런 규칙이 없으면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가 없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교사 각자가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익숙하게 답습하던 인지와 사고의 체계를 벗어던지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보편적 가르침'은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다. 한 곳에 고정되는 순간 '보편적 가르침'은 더 이상 '보편적 가르침'이 아니기에 뿌리내리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보편적 가르침'은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보편적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살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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