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준익 감독 영화 그닥 안 좋아한다. 작년에 봤던 빼고는 다 별로였다. 역시 그러하다. 플롯구성, 캐스팅, 연기, 대사, 영상 모두 마음에 안 들었다. * 그럼에도 주인공인 '박열'이라는 인물은 정말 좋았다. 왜 이런 인물을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철저히 고증했다고 하니 실존인물과 거의 비슷할 것이다. 헬조선에사 보기 드문 '근대적 개인'의 면모가 돋보였다. * 아나키즘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이걸 잡고 깊이 파고들 여유는 없고, 공부하는 도중에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면 좋겠다. 아나키즘을 보통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는데, 본래 의미에 가까우려면 반-지배-주의(anti-archy-ism)라고 옮기는 게 더 맞지 않나 싶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자격 만으로 모두 평등하고, 모든 형태의 권력과 지배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이런 영화가 어째서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개봉한 건지 아직도 의문스럽다. 최고의 예술가가 빚어넨 걸작을 동시대에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항상 감사하다. *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동생인 조나단 놀란이 각본에 참여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나뉜다고 한다. 조나단 놀란이 참여한 작품은 서사가 치밀하고 탄탄하다고 한다. 반면 크리스토퍼 놀란 혼자 극본을 쓴 작품은 서사가 좀 약하다는 듯.에는 조나단 놀란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대신 압도적인 영상미와 관객의 멱살을 붙들고 흔드는 듯한 음악과 음향, 독특한 편집으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는 충분히 높았다. *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예고편에 나오는 광고..
*솔직히 진짜 못 만들었다. 주제는 너무 돌출되어 있고, 감동과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고, 플롯은 빈틈 투성이다. 명배우들이 모였는데도 연기가 어색한 장면이 너무 많다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먼 부분이 꽤 있다고 한다. 고작 이거 만들자고 그만한 돈을 들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류승완이라면..'하고 약간이나마 기대를 했지만, 그마저도 충족되지 않았다. 소재의 압박에 감독이 짓눌린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 위의 내용을 전제로 깔고, 그래도 나는 류승완 감독을 좋아하니까, 변명거리들을 좀 생각해봤다. 류승완 정도 되니까 '군함도'라는 소재를 다룰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군함도'는 좀 더..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서로에게 들이는 시간만큼 관계가 깊어진다. 너무나 통속적인 모습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설렘으로 사랑이 시작된다. 희대의 명대사, "라면 먹을래요?" 우물쭈물하며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 두 사람의 거리는 이 한 마디로 제로에 수렴해버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어느 봄날, 두 사람의 사랑도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색이 있다. 두 개의 색이 합쳐져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관계의 친절함이 달라진다. 다행히 두 사람은 멋진 색을 조합해낸 것 같다. 언제라도 함께하고 싶고, 쉴 새 없이 서로를 탐닉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사이 좋게 속도 맞춰 한 발 한 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랑의 걸림돌은 뜬금없이 나타난다. "사귀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오래, ..
'한국형 재난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재난 영화면 재난 영화지 왜 굳이 한국형이라고 특별히 범주를 설정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한국형 재난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다.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재난의 종류는 다양하다. 부실공사, 전기 합선, 방화, 수해, 전염병, 심지어 괴물의 출현 등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소재들이 사용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한국형 재난 영화'라고 하나의 범주에 엮일 수 있는 이유는 부정하게 뒷배 봐주기, 재난 방지 대책의 부재,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매뉴얼, 사적 이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사람들, 무능하면서 실적만 챙기려는 행정 기관의 모습 등과 같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를 갑갑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영화 에서 터..
얼마 전 초등반 수업에서, '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해내는 것'과 '상황에 따라서 마음을 바꾸는 것' 사이에서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지정해보도록 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쪽에 자신을 위치시키려고 했다. 나 또한 비슷한 마음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태도가 맞고 또 옳다고 배워왔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 교육의 효과인지, 사람들은 입장을 자꾸 바꾸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소속 정당을 옮긴 정치인은 '철새'라고 조롱하고, 직장을 자주 옮겨다닌 사람은 조직생활에 부적합한 것은 아닌지 의심받는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반복하는 사람은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결정의 번복은 불확실성을..
*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그 욕망은 일차적인 성욕일 수도 있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물질적 소유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고급 와인을 시켜도 가격에 쫄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을 구하려고 한다. * 존엄성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등장 인물들이 욕망 추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존엄성이다. 내가 나로서 살고 싶은 마음, 타인에 의해 짓밟히면 안 되는 무언가, 차라리 죽더라도 잃고 싶지 않은 존재가치, 그것이 존엄성이다. 하정우의 마지막 대사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ㅈㅈ는 지키고 죽어서 다행이다.") * 그 누구도 타인을 도구로 대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연스레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욕망 추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가..
2년 전쯤, 한 시사잡지에서 영화 의 소개글을 보았다. 굉장히 좋은 교육영화라고 했다. 교육과 관련된 자료들은 가리지 않고 다 보던 시절이라, 이 영화도 그 공부의 일환으로 감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예상치 못했던 큰 충격을 받았다. 교사가 교사이기 이전에, 학생이 학생이기 이전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개별적 인간'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교 또한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학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매우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생과 학생이 하나되어 기적을 일으키는 감동 스토리가 아니다. 이 영화와 일반적인 교육영화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주인공은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이기 이전에 삶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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