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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완전한인간지망생 2017. 11. 6. 02:13

도덕이란 삶에 '참여'해 스스로 세상을 '구성'해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답을 주는 존재이거나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온갖 정답으로 채워진 도덕 교과서는 정작 조금도 도덕적이지 않다. 아이들이 직면하는 복잡한 삶의 국면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도록 도와주는 힘,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도덕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실천하고, 보여주고, 나누는 것,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복잡하고, 유쾌하지 않은 현실로부터 아이들을 최대한 떨어뜨려 놓는 것을 도덕이라고 여기는 교육은 허약한 사회를 만든다. 답이 아니고 길이 아니어도 좋다. 부딪치고 다쳐도 괜찮다. 자기 생각이 없는 껍데기뿐인 인간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삶에 뿌리를 내린 도덕, 현실을 직시하는 강건한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옳다는 용기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근엄하고 엄숙해질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고민과 경험 속에서 자신의 도덕성을 갖추어가는 것은 (실은) 가슴 뛰게 즐겁고 감동적인 일이다. (pp. 210-211)

 

인간은 '생각'하는 내용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학습한다. 발단 단계에 맞게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만, 밑도 끝도 없이 구체적 조작 활위만을 많이 하게 되면 학생들은 조작 행위 그 자체만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

학생들의 사고 능력은 '추상화, 개념화'된 상태로 장기기억에 보관되는 지식의 성장과 맞물린다. 직접적 경험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추상화, 개념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의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인지, 단지 수업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함인지 고민해야 한다. (pp. 276-277)

 

교사가 '지식'을 어떤 관점으로 인식하고, '지식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는 교사의 인격, 권위, 자기인식, 도덕성의 결정체이자 뿌리다. 흔히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지식 위주의 교육'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볼 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가 악몽처럼 떠올리는 교육 형태는 지식 위주가 아니라 '정보'위주의 교육이었다. 

 

정보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다. 인터넷 겸색, 주식시장 전광판, 물건 가격표 등을 통해 누구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은 중요성, 정확성, 유용성, 영향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게 체계화된 구조로서 단순한 정보와는 엄연히 다르다. 

기존 교육은 배운 내용이 삶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이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지 못했다. 파편화된 정보의 주입식 교육은 학습자의 삶과 배움의 순환을 끊어버린다.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의 에너지 또한 소멸시킨다. 내가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때, 이를 과거와 같은 교육 형태로 회귀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보수적인 교육관을 지닌 사람들은 학습자에게 전해져야 할 지식이 학습자 외부에 '이미 존재'한다고,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은 학습자가 스스로 지식을 '구성'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쪽 모두 부연 설명과 보완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류가 다음 세대에게 혹은 교사가 학생에게 전해야 할 지식은 엄연히 존재한다. 언어를 생각하면 쉽다. 모든 언어는 문법적 규칙과 특정한 형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언어도 고정불변한 상태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 자체가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내면과 활용의 측면에서도 엄청난 역동성을 갖는다. 

 

이런 지식의 속성을 깊이 있게 체화한 교사는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자,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체계적인 지식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늘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할 뿐 아니라 학생의 지적, 정서적 상태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에게 교육은 결승점이 정해진 마라톤 경기가 아니기에, 학생의 무지와 불안한 행동을 비웃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사는 학생이 교사 능력 밖의 어려운 질문을 하면 "함께 알아보자" "좋은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라고 대답하며 탐구하는 자의 자세를 몸소 실현해 보일 것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오히려 권위를 세운다. 

 

지식의 역동성을 이해한 교사는 자신을 지적 활동이 이뤄지는 거대한 세계의 일부로 인식한다. 즉 지식의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거대한 공동체의 일부로서 학생과의 지적인 대화를 이끌어가며 지식의 세계에 기여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협력과 협동의 의미가 도출된다. 현재 교육계의 키워드 중 하나가 협동학습이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진 이 협동학습을 어떤 이들은 경쟁의 반동, 협동을 위한 협동, 교수학습의 일환으로만 단순화시키고 있다. 

 

교사는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업 내용을 자유롭게 다루며 추론, 예측, 상상, 질문, 경계 넘기를 즐기고, 본보기를 보이며, 학생의 지적인 활동을 자연스레 북돋워야 한다. 교사는 지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지적인 교사는 지식을 통해 학습자를 자유롭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들어서 상으로 받는 1시간의 자유시간, 소비의 자유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매몰되지 않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를 말한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교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습득, 활용, 창조하는 인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지식을 통해 학생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교사가 품어야 할 가장 큰 포부다. 한국 제도권의 입시 위주 교육에 반기를 드는 세력은 많지만, 일부는 기존 교육에 대한 단순한 반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차별적 주입과 암기 위주의 교육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기 위해 지식 교육의 가치를 폄하하고, 학ㄱ와 교사의 역할을 축소 및 왜곡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pp. 28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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