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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린 왕자> 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관계를 소중하게 만드는 건 길들이기 위해 들인 시간'이라는 말을 한다. 누군가를 길들이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관계가 더 깊어지고 소중해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담겨 있는 말이다. 그런데 당연한 말은 일상에서 실천하기 매우 어렵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분일초를 쪼개 쓴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재화와 가치를 구매하여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런데 여우의 말에 따르면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친구가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차산 아래에서 나와 함께 공부하는 중학생들은 나와 만난지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이 넘었다. 초보 선생님이던 시절, 서로 실수도 많이 하고, 사고도 다양하게 쳤다. 그 때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 덕분에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되었고, 수업은 일상이 되었다.


같은 동네에서 초등반 수업도 여전히 하고 있다. 위의 중학생들이 1기라면, 이 초등학생들은 2기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들 중에는 벌써 1년 반쯤 나와 만나고 있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작년에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선배들에게 집중하느라 이들에게는 많은 관심을 주지 못했다. 올해 새롭게 수업에 합류한 학생들까지 총 6명인데,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선배들만큼 정이 가지 않았다. 그저 일이니까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도 되나 하는 고민은 종종 했더랬다.


오늘은 이들과 강남역에서 야외수업을 했다. 방탈출을 한 판 하고,(뽀록으로 성공..) 같이 치킨을 먹고, 어딘가 공원에 가서 술래잡기를 했다. 크게 새로운 감흥은 없었다. 그냥저냥 하던대로 아이들과 놀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사이에도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에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그냥 일이니까 하던대로 수업을 했던 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이전만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수업 외에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초심을 유지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런데 초창기에 비해 일이 늘었고, 그만큼 더 바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수업외에 쓰는 시간은 조금씩 부담스러워졌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수업에도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균형점이 어디쯤인가 다시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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