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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어제는 중1 다섯 명과 수업을 했다.

완전한인간지망생 2017. 6. 16. 02:19

어제는 중1 다섯 명과 수업을 했다. 오래 함께해서 나도 아이들도 서로를 잘 안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웃으면서 넘겨버린다. 그런데 어제는 수업 분위기가 너무 안 잡혀서 화가 났다. 최근 몇 주 동안 계속 정돈이 안 되기도 했고, 요즘 감정적으로 좀 취약하기도 하다. 확 지를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대신 정색하고 분위기를 잡은 다음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만 그런 거냐, 아니면 이 수업이 이제 지루해진 거냐?
- 오늘만 그래요!
근데 요즘 몇 주 동안 계속 이랬던 것 같은데?
- 그건 그래요..
(다행히 양심은 있군..) 이 더운 날에 집에서 쉬면 더 편할 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냐? 너희는 여기 오는 이유가 뭐야?
- 책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하려고요!
진심이야? 양심에 손을 얹고?
- 네!
(이건 뻥 같은데..) 우리 지금 읽는 책 얼마 안 남았는데, 힘들면 이 책까지만 끝내고 수업을 종강하는 건 어때?
- 그건 안돼요! 이제 수업이 일상이 되어버렸단 말이예요.
오.. 그건 정말 고마운 말이다. 친해지는 건 물론 좋지. 근데 좀.. 우리의 거리를 좀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할 일은 하지. 
- 네..


그러고는 어거지로 수업을 더 하고 마쳤다. 아이들은 어른이 화를 내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잠깐 동안은 말을 잘 듣는데, 그개 자발적인 변화는 아니기 때문에 오래 가지 않는다. 행동 방침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어야 예의바르면서도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이런 것까지도 합의를 통해 납득시키려도 노력한다.


그나저나 '일상이 되어버렸다'라는 말이 마음을 울린다. 수업에 가장 흥미가 없어보이는 학생이 한 말이라 더 그렇다. 수업에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즐거워서 가는 수준을 넘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나의 '모임'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 같다. 그 영향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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