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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아무 말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기

완전한인간지망생 2017. 8. 2. 10:55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책이 있다. 장하준 교수의 동생인 장하석 교수가 쓴 과학철학 책이다. 김현수가 추천해서 읽다가 절반 정도에서 포기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해로운 문돌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요약해 보자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정확한 어는점과 끓는점을 측정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논쟁과 합의의 과정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온도계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은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자연과학뿐만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의 개념도 그러하다. 학부생 때 워낙 공부를 안해서 이제서야 홉스, 로크, 루소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공화제, 대의제, 권력분립 등의 개념들이 당시의 치열한 고민과 논쟁을 통해 아주 서서히 정립되는 과정을 보며, 어떤 개념도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 말을 아무렇게나 막 내뱉는 분야가 두 개 있다. 교육과 정치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초중고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은 듯 보인다. 또한 세금 내고 투표권도 보유하고 있으니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몇 마디쯤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전문가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론지어 말한다. 잘 모르는 용어인데도 어디서 귀동냥 좀 해와서는 맥락에도 맞지 않게 막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책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데에는 바로 이 민주주의와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만큼 민주주의와 교육 그 자체, 그리고 협동조합에 맞는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역시나 여기에도 아무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둘 중에 하나는 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공부를 좀 하거나, 그게 귀찮으면 딱 아는 만큼씩만 말하거나. 그래서 아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요즘 어디 가서 조용히 앉아만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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