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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광장

완전한인간지망생 2017. 1. 22. 23:33

1. 두 개의 광장

요새는 주말에 시청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나들이를 나가면 두 개의 한국이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 거대한 무대를 설치하고 촛불을 들고 있는 거대한 인파는 평일 저녁 아파트촌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삼오오 함께 나와 즐겁게 떠드는 학생들, 편하면서도 깔끔한 유명 산악 브랜드 패딩을 입은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들, 고급스러운 코트에 캐시미어 머플러를 두르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품위를 더해주는 중년의 신사숙녀들…… 교보문고를 메우고 있는 인파와 외견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해 시청 광장과 대한문 앞을 점거하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일군의 집단은 평소 도심으로 출퇴근을 하거나 서울 내 대학에 다니는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불편하다. 촌스러운 선글라스와 낡은 패딩, 싸구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벙거지 모자와 귀덮개를 뒤집어쓴 채 거칠게 헝클어지거나 동네 미용실에서 볶은 머리를 가진 중노년의 집단은 평소 생활세계에서 군집한 모습으로 볼 수 없었던 존재들이다. 탑골공원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은 항상 개인으로만, 그리고 배경으로만 존재했다. 폐지를 가득 싣은 리어카를 끌고가거나 출근하는 빌딩의 경비 혹은 청소부로만 마주칠 수 있었다.

이들은 외계인 같다. 통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5%. 추레한 외양을 한 채 거칠고 우악스러운 태도로 조악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고래고래 악을 쓰며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확실히 불편하다. 오프라인 너머의 가상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형형색색의 불규칙한 폰트와 그림판으로 만든 것 같은 조잡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가독성 이전에 읽어야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글을 여기저기 퍼나르며 막무가내로 음모론 수준의 주장이나 욕설을 늘어놓는 모습에 눈쌀을 찌푸리지 않기란 어렵다. 이쯤 되면 이질적인 집단을 볼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을 넘어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불가해함에서 기인한 혐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저들은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할 자격이 있는가?

그들의 현재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찌되었든 간에, 일단 60대 이상 시점에서 병원이나 보호시설 혹은 감옥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능이나 윤리성, 즉 기본적인 사회적 능력이 결여된 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한층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선천적 결함이 없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런 판단을 내리고 저렇게 행동하는가? 수구 언론이나 국정원에 세뇌되어서?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게다.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가지고 행동한다. 저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시점에서 단면적으로 나타나는 기괴함은 잠시 제쳐두고 저 세대가 걸어온 사회경제적 흥망의 길을 간단하게나마 역추적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현재 정치적 의사표현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하며 보수편향적인 연령대는 60~80대이다(80대 이상은 인구수도 상대적으로 적으며 적극적 활동과는 거리가 있으니 편의상 생략하도록 하자). 이들은 1960년에는 3~23세였으며, 1980년에는 23~43세였다. 즉 박정희 집권시기 전체에 걸쳐 유년기 내지 청년기를 보낸 셈이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세력 집권기에 이들은 40~60세에서 50~70세가 되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장년과 노년기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적인 당시의 생애주기에 맞춰 이들의 삶의 경로가 어땠을지 상상해보자.

이승만의 미심쩍은 경제정책으로 인해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거나 막 태어난 사람들은 박정희의 적극적 경제정책과 해외시장 개방으로 인해 급격하게 수요가 늘어난 노동력을 제공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대학진학률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60년대에 3세였던 사람들도 80년대가 오기 전에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60~80년대는 정권의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개인으로서는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만들고 보금자리를 구하고 자식을 낳은, 즉 오늘날 젊은 세대가 죽음에 이르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표준적 도시중산층의 생활양식을 구축한 시기였다.

이후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호황기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을 통해 새롭게 구축한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나오는 안정을 만끽한 시기였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더 좋은 주택을 구하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물론 이 대열에 온전히 끼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도성장은 끊임없는 노동력 수요를 낳으며 어떻게든 생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폭넓게 제공하였다. 평화시장의 비참함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미화되어서도 안되지만, 도시의 하층 노동자의 삶은 이들이 탈출해온 농촌 하층계급의 삶에 비하여 비록 닿기 어려운 하늘에 있지만 서울의 달빛을 바라보고 붙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대부분의 도시 산업예비군은 고향 농촌을 등지고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있었다. 외환위기는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실직자들을 양산하였으며, 장기적으로는 대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 대 단순노동 영역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에서의 지식만으로 회사를 이끌어왔지만 퇴직당한 수많은 산업화 세대들이 위기 이후에도 돌아갈 자리를 박탈하였다. 새로운 시대는 중등교육 과정을 마치자마자 농촌에서 상경하여 넘쳐나는 일자리를 얻은 후 결혼을 하여 도시에 자리잡고 숙련기술을 갈고닦은 억척아범과 억척어멈들을 위한 시대가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안정화시킨 제도권 고등교육 체계 내에서 학벌을 취득하고 새로운 정보혁명과 금융경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을 갖춘 도시태생 화이트칼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남은 건 길고 고통스러운 몰락이었다.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 40~60세에 이르던 세대는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50~70세가 되었고 확실하게 중장년에서 노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년의 소득불평등은 확대되었으며 이는 연금소득 등 노후소득 보장여부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저학력 숙련노동의 시대는 지났으며, 고등교육 학위를 보유하지 않은 노년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가 대다수였을 뿐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으로 도입된 정보경제 시대에 교육받지 않은 노동력이 설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작 산업화 시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저질의 일자리라도 필요한 노년층은 연금을 충분히 수령할 수 있는 자원 투자를 할 수 없는 인적자본을 지니고 있었다. 산업화 시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극소수의 노년층은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꾸준한 자원 투자를 통해 연금을 수령할 수 있거나 굳이 일을 하고 싶다면 지식노동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년층에게 선택지는 엄동설한에 폐지를 줍거나 차가운 방안에서 천천히 고사하는 길이다. 게다가 산업화 시기의 육체노동과는 달리 현재를 담보로 잡는다 하더라도 결코 미래가 어느정도 확률로 보장되는 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멸망만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길이다.

현재 60세 이상 노년층의 경제적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취업률은 30%를 밑돌고 있으며, 그나마도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사회적 자부심도 남지 않았다. 이들의 단체활동 참여율은 40% 남짓, 봉사활동 참여율은 6% 남짓으로 타 연령대에 비해 낮은 비율을 보인다. 단체활동의 내용을 타 연령대와 비교하였을 때에는 종교단체 및 지역사회 모임 참여율이 높은 반면 스포츠 및 레저 모임이나 시민단체 참여율은 낮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유의미한 주체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과의 관계 역시 그리 친밀하지는 못하다. 산업화 시기 권위주의적 노동조건에서 야근과 주말출근을 반복하며, 가족에게도 자신들이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대의 규율을 강요한 이들의 상당수가 황혼이혼이나 부양 회피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3. 노인제국의 역습

그 동안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이들이 학생이던 시절에는 4.19혁명을 이끌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유의미한 조직적 참여를 통해 정치권에 자신들의 의사를 투입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이후의 저항적 집단행동은 대부분 더 젊은 세대 혹은 극소수의 고등교육 수혜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1997년의 제 15대 대선과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 이들은 모두 뚜렷하게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였지만 상대후보와의 격차가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압도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으며(특기할 점은 이 경우에는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18대 대선에는 세대균열이 명확하게 드러나 이들의 대부분이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17대 대선과는 달리, 50대 이하 세대는 정 반대의 투표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보수정당의 후보에 호의적이었으나 세대 전체가 압도적으로 돌아선 것은 참여정부 시기를 거치면서이다.

만약 이들이 단순히 세뇌나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극우적 편향을 가지게 되었다면,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러서야 정렬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정보 통제와 전국가적 세뇌 공작이 벌어졌던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비해 오히려 상당 시일이 지난 민주화 이후 시대에 더욱 큰 편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최소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비해 이념적 다양성이나 정보유통에 있어서 덜 자유로웠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훈련 받지 않는 이상, 인간은 대부분의 정보를 내러티브의 형식으로 변환하여 기억한다. 예컨대 우리가 학창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건 구체적인 성적과 번호, 친구의 숫자 및 네트워크의 강도와 같은 파편화된 자료의 집합이 아니라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 입시경쟁에서 성공 혹은 실패에 이르는 전체적 과정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외부세계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비교적 손쉽고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 패키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노년층의 삶의 경로를 상기해보면 저들에게 권위주의 정권 시절은 인생의 상승기였으며, 민주주의 정부 시절은 고통스러운 하강의 시기였다. 초토화되고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태어났지만 일자리를 얻고 결혼을 하고 자신의 집을 가진 채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잡은 경험은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게 아니다. 이후의 투표 경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당시 밥을 하사해준 지도자들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친 것도 아니다. 모든 세대가 그렇듯이 이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주영 전 회장이나 이인제 의원을 지지하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는 앞서 서술했다시피 비참한 노년의 몰락이 예비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전태일 열사를 위시한 수많은 억압받는 민중과 고문당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행복한 시대로 기억할 수 있냐고. 과연 그들이 특별히 인성이 사악해서일까? 그럼 참여정부 시기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인생의 사랑과 결혼한 사람들 중, 정권에 의해 죽어나간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을 한명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들에게 있어서는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해당 시간대는 빛나는 시간으로 채색된다. 나는 참여정부가 권위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활세계 반경에서 벗어난 대상의 처지보다는 나의 처지를 기준으로 시기에 대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노년 세대가 참여정부를 거치며 급격하게 보수편향으로 기운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0~80년대에는 장밋빛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2000년대 이후는 잿빛의 기억뿐이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은 부정적 요소가 사라진 채 더욱 화려하게 채색되지만, 그럴수록 현재의 기억은 더욱 더 회색으로만 물들어간다. 그리고 억압된 이념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공론장이 미발달한 상황에서 다수가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에게 있어서 가장 명료하게 시간대에 따른 급격한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내러티브 패키지는 경제성장에 대한 주류 우파적 해석, 즉 박정희 영웅사관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허섭한 설명을 믿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보파 상당수가 공유하는 한국판 휘그사관-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로 인한 기득권 세력의 공고화-도 학술적으로 그리 엄밀하지는 않다는 점도 지적해두자.

이쯤 되면 그들이 가지는 정치성향의 내용물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왜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그래,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대북 유화정책에 불만을 가지는 것 까지는 정치적 이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카카오톡에 떠돌아다니는 그 수많은 촌스럽고 말도 안되는 괴담들과 집회에서 외치는 과격하고 천박한 구호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답변을 써보도록 하겠다.


페이스북에서 퍼옴. written by 송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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