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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화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요된다. 그 에너지를 만들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변화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사회를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바꿔보겠다는 사람들은 권력이나 물적 자원을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인적 자원뿐이다. 사람이라도 갈아넣지 않으면 동력을 만들 길이 없다.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보통 아주 불행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활동가들은 자신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고생은 감내하겠다는 신념으로 현재를 버티고 있다. 그들은 이 믿음과 신념이 무너질 때 가장 심하게 상처받고 방황한다. 그런데 같은 문화 안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여서, 소위 진보 업계에서도 한국 사회의 온갖 젹폐가 벌어진다. 나이나 지위를 앞세운 갑질, 성폭력, 지연/혈연/학연에 의한 차별, 남의 공 가로채기, 인건비 후려치기, 내부 고발자 탄압 등의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활동가들은 지쳐서 희망을 놓아버리거나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나는 갈수록 진보 업계의 명망가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이 척박한 토양에서 실력만으로 그 정도의 유명세와 권력을 얻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몇날 몇일 밤을 새야 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임금은 체불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현장 사람들의 민원을 처리해야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절망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노동, 젠더, 환경, 청년, 사회적경제, 시민교육 등은 진보 업계에서 주목받는 테마들이다. 진보 명망가들은 마치 모르는 게 없다는 듯이 여러 개의 테마에 발을 걸치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댄다. 그러는 사이에 정작 그들이 떠드는 바로 그 문제로 인해 그들의 바로 근처에서 직접 발로 뛰는 활동가들이 희망을 버리고 활동을 포기하는 걸 보지 못한다. 활동가들이 그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다가 안되면 탄입하고 협박한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이 지닌 권위를 활용하여 내부고발자를 이단이라고 낙인 찍어 업계에서 추방해버린다. 한 줌짜리 명성을 잃기 싫어서 판 전체를 흐리게 만드는, 고약한 작자들이다. 그들이 '생활 속의 진보'를 말로만 떠들지 말고 자신들의 생활에서부터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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