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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완전한인간지망생 2023. 10. 30. 22:46

영업에는 개인 역량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영업 사원이 된 지 몇 달 정도 지나서 한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는 이전에 나에게 영업 사원에게는 숫자가 곧 적성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었다. 그분께 영업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실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내 말을 단칼에 자르면서, 영업에 개인 역량은 의외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실적이 잘 나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일을 잘하나 싶어서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는 정신 차리고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고객사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뭘 믿고 일을 맡기겠나 싶다. 명색이 IT 솔루션 영업 사원인데, 기술에 대해 모르는 게 아직 많다. 게다가 영업 경력도 짧다 보니,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눈치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영업 기회가 오는 이유는 우리 회사가 쌓아온 업력이 있기 때문이고, 전임자가 일을 잘해놔서 고객들에게 신뢰를 잘 쌓아놨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내가 맡은 고객사는 진작부터 우리 회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영업 사원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밭'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지금의 작은 실적에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내 실력이 아닌 요인들 덕분에 내가 영업 사원으로서의 삶을 잘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대표님과 함께 외근 다녀오는 길에, 영업 일에는 개인 역량이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대표님은 내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나는 내 전임자가 그만뒀을 때, 그가 워낙 일을 잘하던 사람이다 보니, 그 빈자리를 대표님이 걱정하지 않았을까 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직원이 일을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의 실적은 오롯이 그 사람의 역량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후임자가 정해지기까지 당분간은 자신이 그 일을 대신 맡았는데, 그게 조금 귀찮았을 뿐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누구 한 명 그만둔다고 흔들릴 정도로 회사가 약하지 않다는 자신감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아직 영업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대표님 본인은 대표이사라는 직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엔지니어-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래서 영업을 기초부터 배우지 않았다-영업에 기초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영업 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서 영업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개인 역량이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으면서도 분명 누군가는 좋은 실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그렇다. 누가 봐도 일을 엉망으로 하는 사람인데 좋은 밭을 만나서 실적이 잘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온갖 고생을 다 하는데도 도무지 실적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대표님은 영업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만난 영업 잘하는 사람들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했다. 꾸준히 콜드 콜, 콜드 메일하면서 영업 기회를 찾고, 영업 기회가 보인다 싶으면 계약으로 이어지도록 차근차근 진도를 나가고, 계약이 끝나고 나면 대금 결제가 잘 끝날 때까지 챙긴다. 물건을 한 번 팔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고객들의 컴플레인들도 꼼꼼히 챙긴다. 심지어는 컴플레인을 처리하다가 영업 기회를 다시 만들어내기도 한다. 

 

'성실한 게 별거냐', '나도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많아서 바쁜 것과 성실한 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회사에 나가면 날마다 새로운 일이 생긴다. 그걸 바쁘게 쳐내다 보면 정작 챙겨야 할 일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걸 뒤늦게 알아챌 때가 많다. 그러니 챙겨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려면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한편, 바쁜 일들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균형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 나는 요즘 꽤나 바쁘다. 요즘에는 회사 들어오고 나서 야근을 가장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빠서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못 챙기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는 성실하게 일하는 게 아직은 좀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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