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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사원과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완전한인간지망생 2023. 10. 2. 12: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떼

 

얼마 전에 고객사에서 갑작스럽게 발표를 하나 하게 되었다. 나는 미팅 전에 한 번 읽어보시라고 고객사에 자료를 미리 보내줬는데, 그 자료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고객사 측에서 그 미팅에 들어온 사람들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 제품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제품을 사놓고 시간만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제품을 토대로 만든 시스템을 직접 운영하면서 온갖 오류들을 다 해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웬만한 엔지니어들만큼이나 우리 제품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생 기술을 공부해 온 엔지니어들이고, 나는 문과 출신 영업 사원이라 배경 지식 차이도 많이 날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발표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큰 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괜히 겁이 났다. 

 

그런데 그때 묘하게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이 떠올랐다. 예전에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하던 때,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남들을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질 때마다 읽었던 책이다. 더듬더듬 떠올려보자면, 교사는 보통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교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을 온전히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 앞에 서기 겁날 때가 있다. 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생들도 교사가 전달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해석한 내용을 교사와 함께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통을 통해 교실은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된다. 

 

지금은 책 내용이 제대로 기억조차 안 나는데도 그 순간에 그 책이 떠올랐다는 게 참 신기하다. 예전에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 수업을 해야 할 때나, 큰 발표를 해야 해서 마음이 쪼그라들 때 이 책 내용을 곱씹었던 것 같다. 그 버릇이 이번에 되살아난 게 아닌가 싶다. 그 책을 떠올리자 마음의 긴장이 풀리면서 '일단 내가 아는 것만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발표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그리고 내가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미팅도 잘 진행되었다. 다만 발표 끝나고 나서 고객사 직원들이 너무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해서 내가 진땀을 많이 빼기는 했지만 말이다. 

 

영업 사원이 되니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할 일이 많다. 뿐만 아니라 영업 사원은 우리 회사와 고객사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도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된다. 영업 사원들은 기술적인 부분에는 자신이 없으니 엔지니어들에게 질문에 답을 좀 해달라고 넘긴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엔지니어들은 '맞다/틀리다' 또는 '할 수 있다/할 수 없다'라고 손쉽게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영업사원들은 이 간단한 결론을 고객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또한 다음 거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풀어서 고객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럴 때는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처럼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그래서 발표할 때나, 고객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나, 영업 사원에게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크게 봤을 때, 영업이나 수업이나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소통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 고객사 직원들 중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영업 사원들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잘 끌어낼 줄 안다. 반대로 영업 사원들 중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고객사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영업 사원이 고객과 '도움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 같다. 보통은 일반적인 갑-을 관계가 만들어져서 영업 사원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업과 수업이 비슷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수업을 못 하면 학생이 떠나듯이, 영업을 못 하면 고객이 떠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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