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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비가 내려와

완전한인간지망생 2023. 8. 6. 11:28

허브가 되려면 이 비에 흠뻑 젖어야지

어느 날 대표님이 나에게 오시더니, 통신비를 조금 더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우리 회사에서는 매달 월급에 통신비를 조금 포함해서 주고 있는데, 그걸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영업팀에 오면 전화할 일이 많아질 테니 그에 맞춰서 통신비를 더 주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 감사하다고 넙죽 받았다.

 

영업팀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전화할 일이 확실히 많아졌다. 역시 회사는 이유 없이 돈을 더 주지 않는다. 고객들은 메일보다 전화로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내 입장에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전화를 먼저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일은 전화로 미리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에 쓰게 된다. 그나마 나는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는 걸 힘들어하는 성격이 아니라 다행이다. 전화로 일처리를 빠르게 해내게 되면 내 업무 성과가 좋아지기도 하니까 전화 업무가 많아진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었다.

 

그렇지만 가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많이 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전화 한 통 겨우 끝내면 부재중 전화가 3통씩 쌓여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진이 다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을 정도다. 밤늦게까지 일한 다음날 오후 출근해도 된다고 허락받고 늦잠을 좀 자보려다가, 전화가 계속 오는 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재택근무 비스무리하게 하다가 출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아니 고객들이 나를 많이 찾는다는 건 영업 사원으로서 오히려 좋은 일이다. 그만큼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럴 때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두면 나중에 내가 그들에게 부탁할 게 있을 때도 좀 더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책이 생각났다.

 

허브는 분명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허브는 특별하다. 허브는 전체 네트워크의 구조를 지배하며, 그것을 좁은 세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즉 허브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노드들과 링크를 가짐으로써 시스템 내의 두 노드 간의 경로를 짧게 만든다. 그 결과 지구상에서 무작위적으로 선정된 두 사람 간의 평균 거리는 6이지만, 임의의 사람과 커넥터 간의 거리는 대개 하나 내지 두 개의 링크 연쇄에 불과하다.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중에서)

 

그러니까 나는 전화 한 통 한 통 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과 '링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링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이 업계의 허브가 되어갈 것이다. 허브가 되면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영업 사원으로서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전화를 수없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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