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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연봉 협상

완전한인간지망생 2023. 5. 14. 14:40

초심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에 연봉 협상을 했다. 직장인에게 봉 협상만큼 중요한 이벤트가 또 있을까 싶다.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해 얼마만큼 보상을 받게 될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나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앞으로 회사 일에 힘을 얼마나 더 쏟아야 할지 등과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을 연봉 협상 결과를 토대로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연봉 협상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 회사 경영진은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 많았고, 다음 한 해도 잘 부탁한다는 뜻을 담아 나의 다음 1년 연봉을 정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기뻐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백분율 숫자 자체는 꽤 크지만, 내 손에 떨어지는 돈은 여전히 적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나 연차의 직장인들, 특히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아무래도 이 회사에 들어온 첫 해에 받기로 한 연봉이 워낙 낮았다 보니, 회사에서 연봉 인상률을 높게 책정해 준다고 해도 내가 실제로 받는 돈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더 늦기 전에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회사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내 연봉의 출발점이 낮았던 이유는, 내가 전혀 경험이 없는 업계로 이직하면서 그전까지의 경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하고 시작한 사업은 몇 년이 지나도 잘 풀리지 않았다. 특히 COVID-19 시기를 지나면서 거의 망할 뻔했다. 그 시절의 나는 대표로서 두 가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기술자가 되려고 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 자체를 키우는 것보다는 나 한 사람의 먹고사니즘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실수들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연봉 욕심부리는 걸 보니 반성이 모자랐나 보다.

 

사업을 그만두고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을 때, 성장하는 업계로 가서 비즈니스를 다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특히 앞서 말한 실수들을 다시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일에 최대한 집중해서 비즈니스의 기초부터 차곡차곡 배워야 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사는 것 자체에 지장이 없다면 월급을 얼마를 받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연봉 협상 잘 해서 1년에 200-300만 원 더 벌어봤자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연봉 협상 세 번 할 때까지는 그냥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기로 다짐했다. 이번 연봉 협상은 그 세 번 중에 두 번째였다. 그런데 세 번을 다 채우기도 전에 결심이 흔들린 것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이런 글귀를 읽게 되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삶에 접근한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호기심, 감사, 배움에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한 장의 백지를 꺼내 드는 것이다. 그것은 전문가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선불교 승려인 스즈키 순류의 말처럼 “초심자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많지만, 전문가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만사를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하고, 결국에는 옳다고 증명되기를 원한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일과 생활에 접근할 때, 나는 마음과 가슴을 열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 집착, 두려움, 선입견, 심지어 포부 같은 과거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마크 베니오프, <트레일블레이저>-, p. 234)

 

이 글귀를 읽고, 어느새 내가 초심을 잃고 예전에 했던 실수를 또 할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회사 생활이 주는 안정감, 편안함 같은 것에 취해버렸나 보다. 그러다 보니 등 따습고 배 부르고 싶다는 생각에 월급이나 더 받으면 좋겠다고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를 옮길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글귀를 알맞은 때에 읽어서 다행이다. 그 대단한 세일즈포스(Salesforce)를 경영하는 사람조차도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하물며 나는 하루에 열 번씩 초심을 떠올려도 모자랄 판이다. '호기심, 감사, 배움에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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